난독증은 유전될까?
“혹시 나도 그랬는데, 아이도 그러네요”라는 난독증 부모의 걱정
많은 부모가 아이의 읽기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시험 시간마다 긴 지문을 제대로 읽지 못해 답을 찍을 수밖에 없었고,
교과서를 펴면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던 기억이
아이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 자연스럽게 “혹시 이게 유전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난독증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종종 등장하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강하게 유전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유전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부모에게서 아이에게 곧바로 전달되는 질병처럼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이 글에서는 난독증의 유전 가능성을 중심으로
가족력과 환경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자녀가 난독증일 경우 부모는 어떤 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를
신경과학과 교육심리학의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난독증 유전적 소인이 실제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로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독증은 유전적 경향성을 분명히 가진 학습장애이며,
부모나 형제 중에 난독증이 있었던 경우 자녀에게서도 발현될 확률이 일반 인구보다 높다는 사실은
여러 뇌영상 연구와 쌍둥이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특히 미국 예일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난독증일 경우, 다른 한 명이 같은 증상을 보일 확률은 약 60~70%에 달한다.
이는 난독증이 단순한 후천적 문제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선천적인 뇌 구조 또는 신경 회로의 작동 방식이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유전적 소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적 요인—예를 들어 읽기 노출량, 교육 방식, 조기 개입 여부 등—이 적절히 조성된다면
실제 증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경미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다시 말해, 난독증은 유전될 수 있지만
유전은 가능성일 뿐, 결과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환경이 그 가능성을 줄이거나, 혹은 키울 수 있다.
난독증 부모의 경험은 아이의 리스크를 설명하는 중요한 실마리
부모가 어릴 때 책을 유난히 싫어했거나,
받아쓰기와 읽기 시험에서 반복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그 기억은 자녀의 읽기 문제를 진단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부모 자신이 난독증 진단을 받은 적이 없더라도,
읽기나 철자에서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긴 글에 대한 피로감이나
문서 처리 스트레스를 강하게 느낀다면,
아이의 난독증 가능성을 보다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편, 부모가 과거의 기억을 억누르고
“나는 그냥 노력해서 극복했는데,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접근할 경우,
아이에게는 불필요한 심리적 압박과 실패 경험이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난독증 그 자체보다 더 큰 정서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유전적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필요한 조기 진단과 환경적 지원을 제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럴 때 아이는 읽기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신호임을 이해하게 된다.